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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리뷰

은가누 프로필 인생역전 스토리

by 아프리카북극곰 2020. 6. 1.


프란시스 은가누 프로필, 인생역전 스토리


프란시스 은가누 아시나요?


안녕하세요^^ 유용한 정보를 공유하는 아프리카 북극곰입니다.


UFC파이터 중에 눈에 띄는 사람이 있는데요. 바로 오늘 소개할 '프란시스 은가누'입니다.


지금은 정상급 선수로 화려한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사실 그는 누구보다 힘들고 어려운 과거가 있었는데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요인은 바로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보다 힘들고 어려웠던 과거를 가진 프란시스 은가누의 인생역전 스토리를 지금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프란시스 은가누 프로필

-이름 : 프란시스 은가누(Francis Ngannou)

-국적 : 프랑스

-출생지 : 카메룬 바티에

-거주지 : 네바다주

-생년월일 : 1986년 9월 5일(만 33세)

-피지컬 : 193cm / 118kg / 211cm

-링네임 : The Predator

-전적

2020.05 - UFC 249 (VS 자이르지뉴 로젠스트루이크) 승

2019.06 - UFC on ESPN 3 (VS 주니어 도스 산토스) 승

2019.02 - UFC on ESPN 1 (VS 케인 벨라스케즈) 승

2018.11 - UFC 파이트 나이트 141 (VS 커티스 블레이즈) 승

2018.07 - UFC 226 (VS 데릭 루이스) 패

2018.01 - UFC 220 (VS 스티페 미오치치) 패

2017.12 - UFC 218 (VS 알리스타 오브레임) 승

2017.01 - UFC on Fox 23 (VS 안드레이 알롭스키) 승

2016.12 - UFC 파이트 나이트 102 (VS 앤소니 해밀튼) 승

2016.07 - UFC on Fox 20 (VS 보얀 미하일로비치) 승

2016.04 - UFC 파이트 나이트 86 (VS 커티스 블레이즈) 승

2015.12 - UFC on Fox 17 (VS 루이스 엔리케) 승


은가누의 롤모델은 마이크 타이슨이었습니다.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권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꿈에 근접하였고, 오늘도 꿈을 향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단한 인생역전 스토리, 지금부터 은가누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프란시스 은가누 인생역전 스토리

은가누는 1986년 9월 5일 카메룬 서부에 위치한 '바티에'라는 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린시절은 가난에 찌든 어려운 삶이었습니다. 카메룬은 지금도 연평균 소득은 1,500달러 이하일 정도로 가난합니다. 


그가 태어났던 80년대는 지금보다 더한 어려운 시기였고, 교육 시스템도 갖춰지지 않아 학비를 벌기위해 어릴적부터 일을 해야 했습니다. 카메룬의 어린 아이들에게는 미래를 계획 조차 불가능했습니다. 오늘을 살기에도 빠듯하기 때문입니다.


은가누 어릴때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


은가누의 아버지는 '바티에'에서 유명한 싸움꾼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싸움뿐만 아니라 건달들과 어울리며 나쁜짓도 많이 하였고, 집안에서는 어머니와 형제들을 자주 때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릴적부터 주변 사람들이 은가누는 아버지를 닮아 싸움꾼이나 할거라고 수근거렸습니다. 하지만 은가누는 이러한 얘기를 끔찍하게듣기 싫어 했습니다. 


은가누가 6살이 되던 해, 은가누의 부모님은 결국 이혼을 하게 되었고, 동시에 아버지는 가족들을 버렸습니다. 


어머니와 4남매(3남1녀)는 친척집과 지인집을 떠돌아 다니며 겨우 어려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은가누는 아버지와 생김새와 체격이 형제들 중 가장 닮았고, 그로인해 크면 애비처럼 싸움질하고 나쁜짓 많이 하겠다며 잔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은가누는 아버지를 닮았다는 소리가 가장 듣기 싫은 소리라고 했습니다. 그러한 얘기를 들을때 마다 은가누는 아버지같이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은가누 어머니


3남 1녀를 키우기 위해 고생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란 은가누는 권투선수가 되

어 부자가 되고,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려야 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은가누의  꿈은 누구도 응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쓸때없는 생각이라며 무시하기 일쑤였습니다. 은가누가 자란 마을은 하찮고 볼품없었으며 유명인인 단 한명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정적인것은 권투선수가 되려면 권투를 배울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은가누의 꿈을 주변인들에게 얘기하면 놀림거리가 되곤 했습니다.


어릴적 학비가 없어 학교를 다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12살 때 부터 채석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강바닥에서 모래를 삽으로 트럭에 싣는 일을 하였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물속에서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채석장은 큰 돌들이 자주 떨어지는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매일 주변에 동료들이 다치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매일 주변에 다치는 친구들을 보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단순 노동만 계속 했던 은가누의 하루하루는 너무나 괴웠습니다. 일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미래가 보이지 않아 희망이 없다는 것이 은가누의 마음을 절망으로 가득채우게 하였습니다. 


은가누와 고향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덩치가 커지고, 아버지와 점점 비슷한 체격으로 성장하자 조직폭력배들이 유혹을 합니다. 하지만 어버지와 같은 삶을 절대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지켰고, 막노동을 하며 열심히 살아갑니다.


은가누는 아버지의 파이터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싸움에 대한 열망과 힘과 실력은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늘 갈등속에서 살아갔고, 고민이 깊었습니다. 나의 싸움 실력을 범죄가 아닌 정당한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고민 중에 권투선수가 되기를 결심하게 됩니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떠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은가누가 22세가 되자, 고향을 떠나 카메룬의 대도시인 두알라로 갑니다. 그곳에서 의류 제조업체에 취직하여 무거운 짊을 옮기는 일을 합니다.


낮에는 일을하고 밤에는 복싱을 배웁니다. 하지만 한계에 부딪힙니다. 카메룬의 아무리 큰 도시라 할지라도 제대로 가르쳐주거나 알려주는 코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해가 지난후 은가누는 간염에 걸리게 되었고, 병원비가 없어 고향으로 내려와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고향에서 치료를 받으며 소일거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이제는 카메룬을 떠나 선진국에서 권투를 배워야 겠다고 결심하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은가누는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작은 가방만 하나 들고 프랑스로 향하게 됩니다.


프랑스에는 정상적일 길로 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가야만 하는 험한 길이었습니다. 카메룬에서 탈출하여 니제리와 알제리를 걸쳐 모르코로 갔다가 모로코에서 스페인을 건너야 하는데, 이는 잠깐 방심하면 죽을수도 있는 끔찍한 과정이었습니다. 


스페인 멜리야 철조망


가장 힘들었던 스페인의 멜리야 철조망은 끔찍한 기억이라고 후에 은가누는 밝혔습니다. 결국 스페인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7번째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스페인 남쪽 타리파에 도착해서는 불법체류자로 잡혀 2개월간 감옥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스페인과 카메룬은 송환 협정이 없어 석방되었고, 겨우 프랑스로 갈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고난의 길을 이겨내고 결국 2013년 6월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고, 이민자 피난처에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짧은 시간 보내고, 은가누는 권투 체육관을 찾으러 다녔습니다. 가진 돈은 겨우 100유로였습니다. 잘곳이 없어 노숙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노숙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꿈과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일을 하게 되었고, 그로인해 먹는 문제와 자는 문제를 해결하여 너무나 기뻤다고 했습니다. 그가 했던 일은 하루에 900인분 넘는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은가누는 채소를 자르는 일을 담당했다고 합니다. 자원봉사로 일하면서 우연이 MMA체육관의 정보를 듣게 되었고, 그 체육관으로 무작정 달려갔습니다. 


그리곤 은가누는 체육관 담당자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없는 빈털털이입니다. 하지만 구걸하러 온것이 아닙니다. 저는 세계 챔피언이 되는 것이 꿈이라 훈련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복싱화를 살 돈이 없어서 걸레와 같은 신발을 신고, 마우스 피스가 없어 그냥 스파링을 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던 '로페즈' 코치는 은가누에게 몇가지 장비를 선물하였습니다.


은가누는 스파링을 계속하였고, 운동을 제대로 배운적이 없던 그는 많이 서툴었고, 엉망이었습니다. 


하지만 한번 배운것은 최대한 유지하려고 노력했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았습니다. 매번 훈련때마다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고, 계속해서 발전하였습니다.



사실


은가누는 MMA보다 권투를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코치는 은가누에게 "너는 MMA의 역사를 바꿀만한 인재다"라며 설득하였고, MMA가 챔피언 되기 더 쉽고 빠르다는 것을 알고 MMA에 입성하게 된것입니다. 


2013년 11월 MMA데뷔 무대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2년 뒤에는 세계 최대의 MMA 대회인 UFC와 계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고, 미국 취업비자를 얻어 미국에서 선수생활을 하게 됩니다. 


어느정도 인지도와 성과를 통해 많은 부를 얻게 되었고, 그는 고향 카메룬 바티에에서 아이들에게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을 하게 되었고, 체육관을 열어 젊은이들이 무료로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빈민가 출신인 그는 어릴적부터 바닥에서 헤매이며 겨우 버티며 살아가다, 결국 세계 최대 MMA에 입성하여 오늘날 위치까지 올라온 프란시스 은가누!

그는 결국 카메룬에서 영웅이 되었습니다. 


최고의 스승은 '절박함'이다는 말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은가누를 전세계 MMA팬들은  주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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